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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얼굴, 얼굴 리뷰, 연상호 감독, 신현빈 연기, 박정민, 얼굴 영화 후기, 한국 영화 솔직히 저는 연상호 감독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극장에 갔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한참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충격적인 반전 때문이 아니라, 감정이 끝없이 뒤집히는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영화는 사건 해결에 집중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 영화는 그보다 훨씬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 연상호 감독이 다시 증명한 것 처음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시작하는 도입부가 낯설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정각장인의 삶을 따라가는 구성이라 잔잔한 휴먼 드라마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는 순간, 저도 모르게 허리를 세우고 보게 되더라고요. 실종됐던 어머니의 유골이 40년 만에 발견됐다는 설정은 자극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연상호 감독은 이걸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기억의 공백'으로 다룹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가족사와 관련된 복잡한 감정을 겪어본 적이 있습니다. 오래전 집을 떠난 친척에 대해 가족들이 말을 아끼는 분위기 속에서 자란 경험이 있거든요. 정확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채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야"라는 식의 단편적인 평가만 접하다 보니, 오히려 더 궁금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영화 속 임동환이 어머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왔다는 설정이 그래서 더 와닿았습니다. 사진 한 장 없이 장례를 치른다는 건 단순한 슬픔이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지워진 사람을 마주하는 기분일 겁니다. 특히 이모들이 "못생겨서 사진을 안 찍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굉장히 불편했습니다. 저는 그 대사를 들으면서 현실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누군가의 삶이 축소되고 왜곡되는 장면들을 떠올렸습니다. 외모, 성격, 한두 가지 사건으로 사람 전체를 규정해버리는 일들 말입니다. 한 인간의 삶을 그렇게 단정 짓는 태도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영화는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 신현빈과 박정민이 만든 온도 연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영화에서는 사건이 중심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제 경험상 이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가 핵심이었습니다. 박정민 배우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점점 무너지는 아들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습니다. 특히 유산을 단번에 포기하고 대신 어머니 사진 한 장만 달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돈보다 얼굴, 재산보다 기억을 택하는 선택이 그 인물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신현빈 배우의 연기는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솔직히 이전까지 저는 그의 연기력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움에 가려져서요.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달랐습니다. 대사가 많지 않은데도, 몸짓과 호흡, 눈빛 없는 얼굴의 기운만으로 인물의 고단함이 전달됐습니다. 특히 "나쁜 사람이 착한 사람인 척하면 그건 나쁜 거예요, 착한 거예요?"라는 질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저는 그 대사를 듣고 한동안 생각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겉으로는 선의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떠올랐거든요. 제작진의 연출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PD 김수진의 존재는 특히 의미심장합니다. 그는 타인의 비극을 '콘텐츠'로 소비하려는 현대 미디어의 얼굴을 대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집요한 취재가 진실에 접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이 이중성은 영화가 선악을 단순하게 나누지 않는다는 증거였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거울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저의 얼굴과, 타인이 기억하는 제 얼굴은 얼마나 다를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저는 누군가의 진짜 얼굴을 편의대로 왜곡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습니다. 자극적인 미스터리로 소비될 수도 있었던 이야기를, 인간의 존엄과 기억의 문제로 끌어올린 점에서 이 영화는 꽤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깊이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감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불편한 질문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