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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박찬욱 감독 영화라면 무조건 극장으로 달려가는 편입니다. 이번 신작 '어쩔 수가 없다'도 예고편이 공개되자마자 개봉일을 달력에 표시해뒀습니다. 묘하게 불편하면서도 웃긴, 특유의 블랙한 톤이 예고편에서부터 느껴졌거든요. 막상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웃어야 할지 불편해해야 할지 헷갈렸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 한국 사회 중산층의 붕괴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사회극에 가까웠습니다. ## 평범한 가장이 살인마가 되는 과정, 생각보다 현실적이었습니다 영화는 25년 동안 한 회사에 다니던 중간관리자 유만수가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저는 이 장면이 생각보다 담담하게 나와서 오히려 더 무서웠습니다. 주변에서 구조조정을 겪은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에 그 공기가 낯설지 않았거든요. "석 달 안에 재취업하겠다"는 만수의 다짐은 너무 익숙한 말처럼 들렸습니다. 저 역시 무언가 잘 안 풀릴 때 괜히 스스로에게 기한을 정해 압박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을 원작으로 17년간 각본을 써왔다고 합니다. 원래 할리우드에서 영어 영화로 만들려다가 투자가 무산되면서 한국 배우들과 한국 영화로 완성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게 더 잘된 선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국 배경이었다면 개인의 일탈로 보였을 이야기가, 한국 사회 구조 속에서는 훨씬 더 비극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만수에게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닙니다. 어린 시절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 때문에 평균 열 달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던 그는, 자수성가해서 돈이 모이자마자 집을 샀습니다. 폐허에 가까웠던 집을 아내 미리와 함께 고쳐서 온실도 만들고 아이들 그네도 달았죠. 저는 이 설정이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집은 그에게 계급 상승의 증표이자, 아버지 세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의 결과물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재취업은 1년 넘게 되지 않고, 퇴직금도 바닥나면서 만수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자들을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처음 총을 쏠 때는 손을 떨며 망설이던 그가, 점차 무표정한 얼굴로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은 소름 끼쳤습니다. 저는 그 변화가 가장 무서웠습니다. 인간이 극단으로 몰릴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너무나 설득력 있게 보여주더군요. ## 온실 장면에서 느낀 것, 이 영화의 진짜 얼굴입니다 이병헌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초반에는 어딘가 초라하고 소심해 보이는데, 살인을 거듭할수록 눈빛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전에 '박쥐'에서 죄책감과 욕망 사이를 오가던 인물과는 또 다른 결이었습니다. 차승원과 이성민이 연기하는 경쟁자들도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라, 또 다른 '불안한 중년 남성'의 얼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만수의 거울이자, 그가 제거해야 할 또 다른 자기 자신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온실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느꼈습니다. 겉으로는 따뜻하고 안정적인 공간인데, 그 안에서 가장 불편한 감정이 오갑니다. 아내 미리가 남편의 만행을 눈치챈 듯한 눈빛으로 서로를 안고 있는 장면은, 사랑인지 공모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과연 도덕적 안전지대인지, 아니면 공범 구조인지 질문을 던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미장센도 여전히 정교했습니다. 차가운 색감의 공장과 따뜻한 톤의 집 내부가 대비되며, 점점 집 안까지 차가운 그림자가 스며드는 구성은 인물의 심리 상태를 공간으로 번역합니다. 예전에 '올드보이'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이 감독은 인물의 심리를 공간으로 설명하는 데 굉장히 능숙합니다. 다만 현대 한국의 CCTV와 과학수사 환경을 고려하면 완전범죄 설정은 설득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영화는 이 지점을 의도적으로 긴장감으로 활용합니다.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는 시신을 수색하고 총알이 발견되며 경찰이 출동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현실성과 장르적 과장이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구조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실직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대사였습니다. 위로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자기 합리화이기도 합니다. 만수가 "어쩔 수가 없다"를 반복할 때마다 저는 묘하게 불편했습니다. 우리도 살면서 비슷한 말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물론 대부분은 살인까지 가지 않지만, 작은 비겁함이나 타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기분이 마냥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통쾌한 복수극도 아니고, 완전한 범죄 스릴러도 아닙니다. 대신 웃으면서도 씁쓸한 감정이 남습니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동안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을 곱씹게 됐습니다. 그 말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인지, 아니면 우리가 선택을 회피할 때 쓰는 변명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대중적으로 폭발할 작품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극장에서 볼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1yvvKVagh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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