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어쩔수가없다 리뷰 (현실반영, 해고의미, 경쟁구조)

info8505 2026. 3. 19. 17:06
반응형

어쩔수가없다, 박찬욱, 이병헌, 영화리뷰, 재취업, 해고, 경쟁사회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이거 남 얘기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25년간 제지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만수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제거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적으로 스릴러 영화라고 하면 긴장감이나 반전에 집중하는데, 이 작품은 오히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구조 자체를 정면으로 들이받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실직의 무게와 영화 속 만수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ROE처럼 측정되는 인간의 가치, 현실을 반영한 설정

영화 속에서 만수는 자신이 블루칼라 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제지 분야 전문가입니다. 여기서 블루칼라란 육체노동이나 기술직 종사자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무직을 뜻하는 화이트칼라와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만수는 20년 넘게 특수 제지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지만, 해고 이후 면접장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합니다.

이 부분이 현실과 너무 닮아 있습니다. 제 주변에도 한 분야에서 10년, 20년 경력을 쌓았는데 나이나 학력 때문에 재취업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 영화에서 만수가 면접관에게 파피루스에 대응한다면 면남구신 밑에서 이해를 하셔야 됩니다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전문성을 인정받기는커녕 오히려 소통 불가 판정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기업에서는 직원을 평가할 때 ROE(자기자본이익률)처럼 효율성 지표를 사용합니다. ROE는 기업이 주주의 자본으로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냈는지 보여주는 수치인데, 이 논리가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현실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024년 기준 국내 중장년층 재취업률은 30%대에 불과하며, 특히 제조업 분야는 더욱 낮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출처: 고용노동부)

 

저도 한때 일이 끊겼을 때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도 갈 곳이 없고, 하루가 길게 늘어지면서 점점 쓸모없는 사람이 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만수가 옥상에서 화분을 들고 망설이는 장면이 단순한 범죄 계획이 아니라 극단적 선택의 은유처럼 보였습니다.

종이가 상징하는 삶의 기록, 해고가 가진 폭력성

영화에서 종이는 단순한 직업적 배경이 아닙니다. 만수는 종이는 우리의 삶입니다라고 말하며, 이력서라는 종이 한 장에 자신의 25년 경력이 압축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일반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종이는 낡은 매체로 여겨지지만, 영화는 오히려 종이를 통해 인간의 역사와 존재 증명을 이야기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만수가 해고는 도끼로 사람 목을 자르는 것과 같다 고 말하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직장을 잃는다는 건 단순히 월급이 끊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 경험상 실직은 자존감, 가족 관계, 미래 계획까지 동시에 무너뜨리는 구조적 폭력에 가깝습니다. 2023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실직 후 우울증을 경험하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2.3배 높다는 결과가 이를 증명합니다(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그래서 만수가 가짜 회사 레드페퍼 페이퍼를 만들어 경쟁자의 이력서를 모으고, 그들을 제거하는 행위는 극단적이지만 논리적으로 연결됩니다. 이력서를 없앤다는 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행위와 같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해고 = 살인"이라는 은유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만수가 만나는 경쟁자들도 각자 사연이 있습니다. LP를 사랑하고 종이에 집착하는 구본모, 딸을 위해 구두를 파는 고시조. 이들은 모두 만수처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버티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이 설정이 가장 잔인하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만수가 제거하려는 대상은 또 다른 자신이라는 아이러니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제지 분야는 재생산업의 최선진국이라는 설정이 나옵니다. 재생이란 폐지를 모아 다시 종이로 만드는 과정인데, 이는 만수가 자신의 삶을 재생하려는 시도와 겹쳐집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재생이 쉽지 않습니다. 한 번 끊긴 경력은 다시 이어지기 어렵고,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는 줄어듭니다.

무한경쟁 구조 속 개인의 선택, 예측 불가능한 결말

영화의 백미는 결말입니다. 일반적으로 범죄 영화라면 주인공이 처벌받거나 성공하는 이분법적 결말을 예상하는데, 어쩔 수가 없다는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제가 원작 소설을 읽었을 때도 도대체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만수의 아내 미리는 남편의 행동을 알면서도 묘한 태도를 보입니다. 당신도 할 수 있어 라며 응원하면서도, 동시에 집을 팔자고 현실적인 제안을 합니다. 이 캐릭터가 흥미로운 건 단순히 희생적인 아내도, 냉정한 배우자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손혜진 배우의 연기로 완성된 미리는 관객이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복합적인 인물입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한경쟁 구조 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경쟁자를 제거한다고 해서 만수의 자리가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걸 영화는 계속 보여줍니다. 제 생각엔 이 구조가 가장 무섭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시스템은 변하지 않는다는 무력감 말입니다.

영화의 기술적 완성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김우형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화면은 BBC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특히 만수의 집은 류성희 미술감독이 70-80년대 부유층 주택 양식과 노출 콘크리트를 결합해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공간 자체가 만수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입니다. 이병헌의 만수는 평범한 가장에서 점점 변해가는 과정을 표정만으로 보여줍니다. 박희순, 이성민, 차승원까지 각자의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단순한 경쟁자가 아닌 입체적인 인물로 만듭니다.

결국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사람인가. 정답은 없지만, 질문은 계속 남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불편했지만 동시에 계속 생각하게 됐습니다. 만수의 선택이 옳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를 그 지경까지 몰아간 구조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책임이 있지 않을까요.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도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게 이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중반 이후 살인으로 이어지는 전개는 조금 과장된 느낌도 있습니다. 메시지를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는 건 알겠지만, 초반의 리얼리티가 워낙 강해서 후반부는 장르 영화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현실을 정면으로 찌르는 힘이 강한 작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LHbqw9emDCQ

반응형